논물이 찰랑일 때 비로소 논밭은 찬란해져요. 밭에 들어찬 감자와 양배추, 당근, 양파, 허브는 나날이 세를 키워가요. 성큼성큼 자라는 작물을 수확하다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는 5월. 한 달 동안 심은 고구마 순을 때우고, 풀을 매면 어느새 빈 논이 모로 꽉 들어찰 거예요. 벌써 초여름 같지만, 논밭상점에는 아직 작년 가을이 남아있어요. 고구마말예요. 수확한 100톤 중 20톤이 남았어요. 5월이 되면 창고가 빌 줄 알았는데, 재작년에 비해 나가는 양이 줄었어요. 작년은 전국적으로 고구마 심은 농가가 워낙 많아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기도 했고, 거래처와 미리 출하를 약속한 양도 많이 줄었어요.

일반시장 고구마 가격이 휘청 일 때마다, 논밭상점도 조용히 휘청거렸어요. 머리로는 야무지게 오래, 잘 보관할수록 가격은 안정화되거나 올라야 할 것 같은데 실제는 그러지 못 했어요. 시장 저장 고구마 가격은 터무니없이 떨어졌고, 우리 고구마는 주목받지 못 하는 상황이 이어졌어요. 농사지으며 이미 들어간 생산비를 나중에 깎아야 할 때, 우린 고민하곤 해요. 엎어야 할까, 팔아야 할까. 밭에 있는 작물이라면 엎는 게 나았을 테지만, 이미 오랜 시간 저장 중인 고구마는 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. 또 저장 중인 고구마 상태가 너무 좋았어요. 생산비를 깎아서라도 팔자, 그러면 안 된다, 마지노선을 지켜야 한다. 엄마랑 아빠, 저. 우린 한창을 옥신각신했던 것 같아요.

논밭상점에게 고구마는 기둥이에요. 기둥 같은 고구마 가격을 내리고, 또 내리기로 하니 그동안 고구마를 사 드신 단골들에게 죄송한 마음이에요. 부디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주셨으면 해요. 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고구마에 문제가 있어 할인에 할인을 더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. 어느 때보다 당도도 높고, 품질도 좋습니다. 부디 많은 분들에게 논밭상점 박종권고구마가 전해지길 바랍니다. 또 그 힘으로 우린 올해도, 묵묵히 열심히 농사짓겠습니다.